명상가들의영성

YHWH

오래된미래관찰자 2010. 7. 24. 01:59

유대인들이 부르는 하느님 이름에는 실로 놀라운 계시가 담겨 있다. 거기엔 우리 영성의 본질과,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숱한 우상숭배와 터무니없는 교만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줄 심오한 가르침이 있다.

 

  지금 우리가 발음하는 대로 하면 하느님 이름은 '야훼'(Yahweh)다. 그런데 그것이 히브리어로는 성스런 자음(子音) '요드, 헤, 와우, 헤'(YHWH)다.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발음이 불가능한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려고 하는 것은, 계명에 이른 대로, 처음부터 '헛된' 짓이었다. 대신에 그들은 '엘로힘' 또는 '아도나이'로 말하고 기록하였다. 하느님 쪽에서 볼 때 당신의 정체는 신성한 비밀이었고, 인간이 머리로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느님께 당신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은 모세가 얻은 답은 "나는 곧 나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출애굽기 3, 14-15)였다.

  이 '발음 불가능한 이름'에 담긴 깊은 뜻을 이제 우리는 짐작하게 되었다. 본디 그것은 입술과 혀로 발음되는 이름이 아니라 코로 숨쉬어지는(breathed) 이름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신성한 자음의 정확한 발음은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를 그대로 시늉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David Abram, The Spell of the Sensuous, New York, Random House, 1966, pp. 249-50). 그런즉, 우리가 살아 있으면서 매순간 하는 일이 하느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맨 처음 한 일이 그분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고, 세상을 떠나면서 맨 나중에 할 일이 그분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 나라의 명상수련모임에서 이 얘기를 하였고, 그것은 사람들의 신앙과 기도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호흡에는 유대교식, 이슬람식, 기독교식 호흡이  없다. 아메리카 호흡, 아프리카 호흡, 아시아 호흡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가난뱅이 호흡도 없고 부자 호흡도 없다. 실로 놀이마당은 지극히 공평하다! 지구의 공기는 하나고, 어디에서나 같은 공기다. 하느님의 바람은 어디든지 "제가 불고 싶은 대로"(요한 3, 8) 부는데, 가지 않는 곳이 없고 따로 가는 곳이 없다. 어느 인간도, 어느 종교도, 이 '영'을 통제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느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하고 있는 호흡처럼, 가까이 있고 가까이 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기도의 스승들은 늘 말해왔다. "네 숨과 함께 있으면서 숨에 마음을 모아라." 그 숨은 야훼께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창세기 2, 7) 바로 그 숨이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으로 거두신(요한 19, 30) 바로 그 숨이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을 향하여 평화와 용서와 성령으로 내쉬신(요한 20, 22) 바로 그 숨이다.
  그 숨, 바람, 영이 정확하게 '없는 것'(nothing)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everything)이라는 사실! 놀랍지 않은가?

  주의 깊게 마음 모으고 숨을 쉬어보라. 당신은 동굴의 원시인에서 도시의 현대인까지, 동물들에서 식물들까지, 모든 인간과 살아있는 것들에 연결된 당신을 느낄 것이다. 과학자들도 우리에게 말해준다, 지금 우리 코를 드나드는 원자 알맹이들이 원초의 빅뱅에서 발생한 바로 그 원자 알맹이라고. '하나임'(Oneness)은 더 이상 신비주의적 관념이 아니다. 분명한 과학적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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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ichard Rohr, The Naked Now, (A Crossroad Book, New York, 2009), 제2장, The Great Unsaying, pp.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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