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6월18일 (세째주 금) 21;00 관옥(觀玉) 이현주목사 초청 예배 예정.
이현주는 감리교 목사이다. 동화작가이며 번역문학가이기도 하다.1944년 충주에서 출생하여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신학교 재학시 변선환 박사에게 배웠으며, 졸업후 죽변교회 등에서 목회했다. 1977년 《공동번역성서》번역에 참여했으며,저서로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시적으로 표현한《예수의 죽음》등이 있다. 《기독교 사상》에 공동번역성서를 성서번역본으로 한 성서 묵상을 연재한 경험이 있을정도로 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풍경소리》라는 기독교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스승이자 '한살림'의 지도자이었던 장일순 선생의 제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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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목사의 『생각대로 성경읽기』. 저자가 성경을 읽으면서 틈틈이 낙서하듯이 기록해둔 내용을 정리하여 담아낸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모시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성경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저자소개
- 저자 이현주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1962년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 기초신학을 공부하던 중,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당선, 1971년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사상’ 편집 기자를 시작으로 크리스천 아카데미 간사, 대한성서공회 공동번역을 위한 문장위원을 거쳐 1977년 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죽변교회, 조촌교회, 대한성공회 교무국, 성공회 서울대성당, 새누리신문, 반석교회를 마지막으로 1995년, 마침내 ‘소속된 곳이 없는 아무개’가 되었다.
한때 성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다행하게도 그 꿈을 스스로 접고,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스승의 말씀에 기대어, 법적으로 ‘노인’이 되는 해를 1년 남긴 지금은 결혼한 지 35년 된 아내와 고향인 충주에서 살고 있다.
저서로 「알게 뭐야」「살구꽃 이야기」「날개 달린 아저씨」등의 동화집과「사람의 길 예수의 길」「이아무개의 장자 산책」「대학 중용 읽기」「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길에서 주운 생각들」「이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이아무개 목사의 로마서 읽기」「이아무개의 마음공부」「예수의 죽음」「지금도 쓸쓸하냐」등이 있다.
역서로는「배움의 도」「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 기타」「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숨겨진 보물을 찾아서」「예언자들」「세기의 기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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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671] 한송이 들꽃으로 저자 : 이현주. 연도 : 2008. 3. 이현주 지음 / 신국판
이현주의 생각대로 성경읽기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삼인
번역자: 이현주 저 자 틱낫한 H.킹 지음/ 이현주 옮김
지음/ 351쪽/ 이현주 옮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이현주 저자, : 이현주 지음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이현주
예수에게 도를 묻다 · 이현주 오늘 하루 (이현주) [알라딘]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이현주 목사 이현주목사 지음 관옥 이현주 목사의 성서묵상 이현주 목사가 쓴 [예수의 죽음]
관옥 이현주 목사
경향신문 > 문화 > 종교
- 이현주 목사 “계획없이 살아요, 하루 하루가 새롭죠”
- 충주 | 글·사진 김종목기자 jomo@kyunghyang.com
ㆍ충주 추평리 이사 5년째… 이 현 주 목사
이현주 목사는(65) 2004년 서울에서 충북 충주로 이사했다. 충주시 중심부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엄정면 추평리의 빈집을 개조해 부인(정용숙·61)과 함께 살고 있다. 24일 오전 약속 시간에 맞춰 추평리에 도착했을 때 이 목사 부부는 마을 어귀에 환한 표정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조롱박 넝쿨이 지붕에서 처마를 타고 감싸는 집. 앞마당 텃밭과 뒤편 대밭이 통한 마루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 목사는 지난 15일부터 서울 YMCA의 목요강좌에서 ‘성서를 통해 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강연 중이다. 20년 만에 부활한 목요강좌는 1960~70년대 다석 유영모, 함석헌 등이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던 자리. 불교와 유교, 노장사상을 두루 섭렵한 이 목사는 부활된 ‘목요강좌’의 맥을 되살릴 수 있는 적임자였다. ‘목요강좌’의 의미부터 물었지만 이 목사는 큰 뜻을 부여하지 않았다.
“거절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어디에 와서 성경 이야기를 해달라는 제안이에요. YMCA 목요강좌도 그중 하나죠.”
강연이나 예배 요청이 있으면 응할 뿐 자신이 먼저 계획을 잡는 일이 없다고 한다. “계획 없이 살고 싶은 지 오래 됐고, 갈수록 실현되는 것 같아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날마다 기대합니다.” 이 목사는 25일 예정된 충주호 주변의 야외 예배, 29일 목요강좌 말고는 계획이 없다. 물론 요청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도 계획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참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집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데가 없다’고 하셨겠냐고요. 요새 그 말씀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대신 매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사람을 만나면 정성으로 대하고, 일도 정성껏 하는 거죠.”
‘예수의 삶’과 ‘구도자의 삶’을 추구하고 싶다고 했다. “세상의 변화에 걸리거나 막혀서는 안 되고, 관계없이 제 갈 길을 가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님이 앞서 가신 그 길을 보고 잘 배우려고 합니다.” 자신의 갈 길이 우선이기에 현실정치에 관해서도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들(정치인)을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는 길에서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를 못 느낍니다.”
흔한 정치 혐오의 차원과는 달랐다. “예수님은 당시 정치 상황에 찬성이든 반대든 관여하지 않고, 적극적 의미로 보면 무시하고 자기 갈 길을 갔다”며 “그래서 강력한 저항 세력, 제거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되었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자체가 그 존재를 인정하는 건데, 반대하면 반대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행인·편집인은 물론 독자까지 구속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성서조선’이었다”며 “거침없이 성경 이야기만 한 게 오히려 일본에 두려움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이 목사는 때로 현실정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곤 한다. “(잘 안 하려고 하지만) 물어보면 답을 한다”며 예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예수님도 로마를 업고 정치를 한 헤롯에 대해 ‘여우’라고 했는데, 그건 반대가 아니라 정체를 드러내려고 한 것”이라며 “감옥까지 가신 문익환 목사 같은 분의 발언·행동도 그런 맥락”이라고 신앙과 영성의 차원으로 진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보수 기독교인들이 보수를 표방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는 ‘미숙한 신자’입니다. 미숙한 걸 꾸중할 필요는 없고, (기독교) 지도자들이 신앙을 잘 가르쳐야죠.”
‘영성’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 목사는 “영육이란 말에서 육은 만져지고 보여지며 무게도 있는 물질이고, 영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며 “영성은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이 없어도 괜찮구나 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게 희망입니다.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치는 사람이 늘어 임계점을 넘어서면, 전쟁도 없어지고, 거짓말하고 남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들도 없어질 겁니다. 전 세계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뉴밀레니엄(2000년)을 함께 기념했는데, 그 새천년이 오고 있다고 봅니다.”
추평리에 터전을 둔 이 목사의 삶은 편안해 보였다. “마음이 편한데, 하나는 슬프고 또 하나는 고맙고 그래요. 사람 사는 걸 보면 자기가 자신을 괴롭히는 게 보이니까 안 됐죠. 농사짓고, 일하는 사람들 은혜로 제가 사니까 얼마나 고마워요.” 또 인터뷰 자리를 함께한 부인을 보며 “저 사람이 많이 아픈데, 아픔을 덜어줄 수 없어 슬프고 아프다”고 했다. 사모(師母)는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존재를 나무에 비유하면 나는 나무에 핀 꽃·열매고 집사람은 뿌리예요. 감춰져 있지만 뿌리가 없으면 꽃·열매가 없잖아요. 참 고마워요.”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이현주 목사는(65) 2004년 서울에서 충북 충주로 이사했다. 충주시 중심부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엄정면 추평리의 빈집을 개조해 부인(정용숙·61)과 함께 살고 있다. 24일 오전 약속 시간에 맞춰 추평리에 도착했을 때 이 목사 부부는 마을 어귀에 환한 표정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조롱박 넝쿨이 지붕에서 처마를 타고 감싸는 집. 앞마당 텃밭과 뒤편 대밭이 통한 마루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 목사는 지난 15일부터 서울 YMCA의 목요강좌에서 ‘성서를 통해 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강연 중이다. 20년 만에 부활한 목요강좌는 1960~70년대 다석 유영모, 함석헌 등이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던 자리. 불교와 유교, 노장사상을 두루 섭렵한 이 목사는 부활된 ‘목요강좌’의 맥을 되살릴 수 있는 적임자였다. ‘목요강좌’의 의미부터 물었지만 이 목사는 큰 뜻을 부여하지 않았다.
“거절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어디에 와서 성경 이야기를 해달라는 제안이에요. YMCA 목요강좌도 그중 하나죠.”
강연이나 예배 요청이 있으면 응할 뿐 자신이 먼저 계획을 잡는 일이 없다고 한다. “계획 없이 살고 싶은 지 오래 됐고, 갈수록 실현되는 것 같아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날마다 기대합니다.” 이 목사는 25일 예정된 충주호 주변의 야외 예배, 29일 목요강좌 말고는 계획이 없다. 물론 요청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도 계획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참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집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데가 없다’고 하셨겠냐고요. 요새 그 말씀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대신 매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사람을 만나면 정성으로 대하고, 일도 정성껏 하는 거죠.”
‘예수의 삶’과 ‘구도자의 삶’을 추구하고 싶다고 했다. “세상의 변화에 걸리거나 막혀서는 안 되고, 관계없이 제 갈 길을 가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님이 앞서 가신 그 길을 보고 잘 배우려고 합니다.” 자신의 갈 길이 우선이기에 현실정치에 관해서도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들(정치인)을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는 길에서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를 못 느낍니다.”
흔한 정치 혐오의 차원과는 달랐다. “예수님은 당시 정치 상황에 찬성이든 반대든 관여하지 않고, 적극적 의미로 보면 무시하고 자기 갈 길을 갔다”며 “그래서 강력한 저항 세력, 제거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되었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자체가 그 존재를 인정하는 건데, 반대하면 반대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행인·편집인은 물론 독자까지 구속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성서조선’이었다”며 “거침없이 성경 이야기만 한 게 오히려 일본에 두려움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이 목사는 때로 현실정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곤 한다. “(잘 안 하려고 하지만) 물어보면 답을 한다”며 예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예수님도 로마를 업고 정치를 한 헤롯에 대해 ‘여우’라고 했는데, 그건 반대가 아니라 정체를 드러내려고 한 것”이라며 “감옥까지 가신 문익환 목사 같은 분의 발언·행동도 그런 맥락”이라고 신앙과 영성의 차원으로 진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보수 기독교인들이 보수를 표방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는 ‘미숙한 신자’입니다. 미숙한 걸 꾸중할 필요는 없고, (기독교) 지도자들이 신앙을 잘 가르쳐야죠.”
‘영성’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 목사는 “영육이란 말에서 육은 만져지고 보여지며 무게도 있는 물질이고, 영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며 “영성은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이 없어도 괜찮구나 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게 희망입니다.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치는 사람이 늘어 임계점을 넘어서면, 전쟁도 없어지고, 거짓말하고 남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들도 없어질 겁니다. 전 세계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뉴밀레니엄(2000년)을 함께 기념했는데, 그 새천년이 오고 있다고 봅니다.”
추평리에 터전을 둔 이 목사의 삶은 편안해 보였다. “마음이 편한데, 하나는 슬프고 또 하나는 고맙고 그래요. 사람 사는 걸 보면 자기가 자신을 괴롭히는 게 보이니까 안 됐죠. 농사짓고, 일하는 사람들 은혜로 제가 사니까 얼마나 고마워요.” 또 인터뷰 자리를 함께한 부인을 보며 “저 사람이 많이 아픈데, 아픔을 덜어줄 수 없어 슬프고 아프다”고 했다. 사모(師母)는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존재를 나무에 비유하면 나는 나무에 핀 꽃·열매고 집사람은 뿌리예요. 감춰져 있지만 뿌리가 없으면 꽃·열매가 없잖아요. 참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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