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관찰자

평화를 찾아서-순종

오래된미래관찰자 2005. 10. 6. 06:15
  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이 아니요
  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도 아니라
  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Seeking Peace 중에서 -  요한 크리스토러 아놀드 지음.  이진권옮김.

 

 

순종

그 분은 이름이 없는  미지의 사람으로 우리에게 찾아온다. 예정에 그 는 호숫가에서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갔었다. 그는 우리에게 똑같은 말 "그대는 나를 따를라"-를 하고, 그가 우리가 이루기를 바라는 일들을 맡긴다. 그는 명령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혜롭거나 단순하든지간에 그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그와 함께 하면서 겪게 될 올가미들이나 갈등들, 고통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로서, 자신들의 경험속에서 그가 누구인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 알버트 슈바이쩌-

 

 

내 아버지는 어린 자녀들에게 진리를 상기 시킬 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성서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비에 대해 말할 때 마다 우물가에서의 예수와 여인의 이야기(요4장이야기)가 떠올랐던 것 같다. 또한 확신에 대해 말할 때는, 아버지는 미지근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자신의 입에서 토해 낸다는 요한 계시록의 말(요한계시록 3:16)을 인용하곤 했다. 순종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어린나귀를 데려오라고 보냈던 구정(막 11:1~11)을 사용했다.

 

예수가 제자 두 사람에게 가서 나귀새끼를 가져오라고 요구 했을 때, 그들에게는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당신들은 보다 위대한 일로 부름 받았다. 누구라도 가서 나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드에게는 그 순간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나귀를 가져오는 것 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었다. 나 자신과 우리들 각자 개인들을 위해서, 나는 하느님이 우리가 행하도록 부르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우리가 그렣게 기꺼이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일다  -J. 하인리히 아놀드)

 

 

우리들 대부분에게 순종은 찔리는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제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이름을 감당하는데 부분이 되어야 할 기쁨과 보종이 우리에게는 부족하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간단할 때 조차도, 교만 때문에 그것을 하지 못할 때도 있으며, 이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찾는 과정 어디에도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개인과 개인주의를 숭배하는 형편에서는, 이것은 그리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본능을 따르고, 주도권을 보여주며, 지도력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워왔고, 또한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도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것, 즉 똑같은 정도로 중요한, 어떻게 따를 것이지를 아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우리 자신이 지니는 최고의 관심사들이 반드시 하느님의 최고의 관시은 아니라는 점과 우리 자신에 대한 주장과 우리 자신들의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결과보다는 나쁜 결시을 맺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언제나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슬프게도 명백한 이익이 없는 경우에(또는 관련된 희생들이 있을 때에도) 다른 이들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은 종종 세뇌되지는 않았더라도, 줏대가 없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신적 권위를 포함한 권위가 무시된다. 부모를 존경해야 하야한다는 생각은 낡은 것으로 치부된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도 과거의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종종 조야한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반복되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불순종과 그것에 뒤따랐던 하나님 진노를 잊어버린다, 또한 우리가 찾는 평화가 혼돈으로 부터 질서를 가져온 창조주로부터 오는 것임을 잊어버린다. 하나님은 단지 "황폐와 공허"가 있는 곳에서 생명을 가져왔다. 그 분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다.

 

자기결정에서 자발적 순종으로 옮겨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예수님조차도 가장 힘겨운 싸움이 복종하는 것이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나 긴 마지막 밤 동안에, 그는 복종하는 것에 저항하면서 피땀을 흘렸다. "이 잔을 저에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이후에 그는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순종은 은총의 근원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순종이 무언가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종종 불순종에 대한 우리들의 이유들은 충분히 그럴듯하게 들린다. 우리는 용기나 힘이, 또는 확실한 통찰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앞에 놓여 있는 과업을 감당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와 똑같이 자주, 진정한 이유는 우리가 덜 고귀하여 게으르고 교만하며 완고하고 자기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는 사랑의 선교회 둉료들과 몇 년동안 경험한 것을 말하면서, 이 문제의 뿌리와 맞서 싸웠다.그것은 우리가 행하도록 요구받은 어떤 일들을 왜 해야만 하는지를 단지 알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와 일단 알고나면 그것을 우리방식대로 하고자 하는 유혹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이루기를 원하는 지를 안다면, 당신을 그 일을 더 잘 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아는 길은 순종을 통해서 뿐입니다. 담쟁이 덩굴과 같이, 당신의 상급자에게 복종하십시어. 담쟁이 덩굴은 무언가를 단단히 붙잡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당신도 순종을 확고하게 붙들지 않으면 거룩함 가운데 자라거나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작은 일에 충성하십시요. 진정한 힘은 꾸준함과 순조에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를 포함한 종교적 공동체의 새로운 식구들과 마찬가지로, 마더 테레사 수도회의 수련수사들도 가입할 때 순종의 서약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서약을 지켜가는 일은 평생에 걸친 과제이다.

 

 

 

  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이 아니요
  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도 아니라
  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6.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1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