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 가벼운 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너희들은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나의 멍에를 함께 메고 내게서 배워라.
나는 마음이 온화하며 겸손하니,
너희는 너희 영혼을 위한 안식을 얻게 될 것이다.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마태 11:28-30)
우리의 선생님이자 친구이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삶에 지치고 무거운 짐에 눌려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오라하십니다.
그 분에게는 모든 고통을 풀어 자유롭게 하실 비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결코 빈말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몸소 그러한 안식을 사셨고
또 우리에게 그 방법을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방법을 믿고 그 가르침대로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그분이 누리셨던 것과 동일한 쉼과 힘과 새능력을 얻게 됩니다.
사람들이 왜 지치고,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라고 여기는 '자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무슨 재주로 지칠 것이며,
무슨 재주로 고통을 느낄 것입니까?
'나'라고 여기는 자아가 있기 때문에
'나의 일'이 존재하게 되고
'나의 일'이 존재하므로 고통도, 염려도 존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일'이 없다면 지칠 일도 무거운 중압감도 없을 것이며
'나'가 없다면 '나의 일'도 없어집니다. 이 비밀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나의 짐'이라고 여겨졌던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맡겨 드리고
그분의 방법을 쫓아 그분의 가르침대로 해 보는 것입니다.
그 분의 온유하고 겸손하며 그짐은 가볍고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고 나면
'나의 일'은 없어지고 '주님의 일'만 남게 되지요.
이 말씀은 나를 통해 살아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자각하는 것(갈 2:20)과 같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는 '주님의 일'은 없고 '아버지의 일'만 있었습니다.(요 14:10)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속에 소원을 두고
그 일을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일은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다면 소망은 저절로 이루어 집니다.
그 분 뜻대로 ....
그래서 그분께는 고집해야 할 자신의 일이 따로 없었으며,
자신의 일이 따로 없었다는 말은
예수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송두리째 비우신 분이셨기에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며,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선언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모두 주님께 맡겼으니
자신이 염려하고 걱정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삶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가 바로 보십시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그것은 아직 주님께 맡기지 않은 부분임을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시는 쉼과 힘과 새능력이 어떤 것인지 알고자 한다면
주님께 자신을 맡겨드리십시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본 사람만이
주님의 짐이 얼마나 가볍고 쉬운지 알게 될 것입니다.
나의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